슬럼프는 너무 자주 우리의 방문을 두드린다
작성자
구현우 시인
작성시간
2019-08-28
조회수
132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숨 쉬듯 찾아오는 그것

특강이나 정규 강의를 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종종 받는다. “슬럼프가 찾아오면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그럴 때마다 나는 이미 답을 안다는 듯, 명쾌하게 말한다. “슬럼프는 극복해 내는 그런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너무 자주 찾아오니까요. 그냥 받아들이고 사는 수밖에 없겠죠.” 그런 걸 물어본 게 아니라는 표정을 지으면 나는 다시 덧붙인다. “하지만 슬럼프를 지나는 두 가지 방법은 알고 있어요.”


“더 이상 쓸 수 없다고 느낄 때까지 더 쓰거나, 아예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거예요.”


첫 번째의 경우: 쓰고 또 쓰기

매너리즘이란 예술 창작과 관련하여 비슷한 태도나 방식이 반복되었을 때 독창성을 잃고 일정한 패턴 안에서 맴도는 일을 말한다. 매너리즘은 꼭 예술 장르가 아니더라도, 변화가 없다고 스스로 느낀다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그렇다면 이미 스타일이 확고한 작가는 이런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분명한 자기 색이 있더라도 그것이 지속된다면 누구든 매너리즘에 갇힐 수 있다. 이를 이겨 내려고 할 때 취하는 방식 중에 하나가 바로 기존에 본인이 써 보지 않았던 소재, 문장, 표현을 일부러 더 해 보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도 할 수 있어.”라고 자신에게 다른 믿음을 줘 보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가수의 노래를 들을 때, 신곡이 자신이 예상하는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노래가 다 똑같네.’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새로운 시도를 했을 때는 ‘잘하는 걸 하지.’라고도 생각한다. 어느 쪽이 정답일까? 정답은 없다. 스타일과 매너리즘은 어떤 의미에서는 한 끗 차이다.


열쇠는 결국 창작자가 쥐고 있다. 잘하던 스타일로 더 써보다가 돌파하는 일도 가능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전에 안 했던 스타일로 가보는 것이 무의미하진 않다. “내가 잘하는 건 역시 그거였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되고 확신하게 되는 일만으로도 충분하다.


두 번째의 경우: 쓰기에서 완전히 도망가기

창작을 오래 해 온 경우에는 그 일에 목을 매기가 쉽다. 이 경우의 핵심은 쓰기 등 일련의 행위에서 ‘완전히’ 도망가야 한다는 점이다. 등단을 바란다거나 작가가 꿈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읽거나 쓰거나 감각하는 일을 잠깐 쉬는 데에도 쉽게 자책하고 강박적으로 자신을 몰아붙인다. 그런 시기는 분명 필요하다. 몰아세울 수 없을 데까지 몰아세우면 초인적인 힘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건 어떤 시기, 시절에나 가능한 것이다. 벨트가 그렇지 않은가. 조이는 게 심해지면 살짝 풀어지기보단 끊어지게 된다.


그러니 쓰는 게 재밌지 않고, 읽는 게 무감해지고, 감각을 집중할 수 없다면 몸을 돌려 잠시 숨통을 터 줄 필요가 있다. 너무 많이 그렇게 해왔다면 조금이라도 읽거나 쓰고 싶을 터이지만 참아 내고(!)―이와 같은 당신들에게는 정말 참아야만 하는 일이다― 온전히 쉬어야 한다. 평범하게 즐길 수 있는 다른 취미를 이참에 찾아봐도 좋다. 여행을 가고 싶었다면 시간과 돈이 허락하는 한에서 잠시 여기를 벗어나도 된다. 며칠, 몇 주, 몇 개월, 심지어는 몇 년이어도 당신에게는 죄가 되지 않는다. 문학은 도망가지 않고 모든 예술은 마찬가지다. 그사이에 감각이 떨어질지언정 읽고 쓰던 가닥이 아예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계속 스스로를 옭아매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책은 당신을 멀리하지 않는다. 가끔은 눈을 딱 감고 책에게서 당신이 멀어져도 좋은 것이다.


슬럼프는 몸과 마음의 일부

꼭 예술 창작이 아니더라도 슬럼프는 온다. 그럴 때는 환기를 해야 한다. 방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슬럼프가 더 이상 문을 두드리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한 방법이겠으나, 문을 열고 그가 들어오게 한 뒤 나는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다. 우리 삶에는 휴일과 휴가가 꼭 있어야 하고, 출근이 있으면 퇴근도 있어야 한다. 작동을 멈추지 않는 기계는 오래 쓰지 않는 기계보다도 고장이 나기 쉽다.



구현우 시인 | stoyer@naver.com

눈 뜨는 기분으로 시를 쓴다. 숨 쉬는 마음으로 음악을 한다. 

듣거나 보거나 쓰거나 말하거나 하면서, 겨우 한 사람이 되어 간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