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맞는 옷이 있다
작성자
구현우 시인
작성시간
2019-07-01
조회수
116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S, M, L, XL, FREE SIZE

일 년 사이에 살이 너무 많이 쪘다. 야식을 참지 못해 식비가 늘었다거나 하는 등 여러 문제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옷이 맞지 않는다는 거다. 청바지를 입으려 해도 허벅지에서 이미 꽉 막혀 버린다. 티셔츠에 목과 팔을 억지로 욱여넣어도 터지지 않고 간신히 버티고 있는 모양새다. 체형이 바뀌어도 이렇게까지 바뀌나? 고무줄 달린 바지나 펑퍼짐한 티를 여러 개 사서 돌려 입고 있다. 맞다. 이건 비극이다. 내가 알던 내 핏(fit)이 아닌데. 축 늘어진 셔츠는 인정하라고 말하고 있다. 장롱의 옷들은 과거에나 네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몸에 맞춰 옷을 사는 게 맞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아끼는 진과 셔츠를 다시 입을 것이다. 나는 익숙한 몸으로 돌아갈 것이다. 지금의 몸에 옷을 맞출 수 없다면, 예전의 옷에 딱 맞는 몸을 찾아야 한다. 맞다. 이건 변명이다.


수선이 필요해

이번 테마는 <누구에게나 맞는 옷이 있다>다. 사실 다르게 정정해야 옳다. ‘누구에게나 맞는 옷’이 있어도 당신에게는 맞지 않는 옷일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프리사이즈로 나온 옷이라고 다 예쁘게 입을 수 있나. 누구나 걸칠 수 있다고 연령 성별 신체 무관하게 다 어울리는가. ‘누구에게나 맞는 옷’은 단점이 최소화되었다고 봐야지 어떤 한 유형에 초점을 맞춘 특별한 장점 하나를 지니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당신은 딱 맞는 몸통과 달리 길게 쭉 뻗어 나온 소매를 팔목 안쪽까지 잘라 내길 바라거나, 단추 한두 개쯤 떼어 내고 싶을 수 있다. 한 치수 더 크게 입는 걸 선호할 수도 있다. 글쓰기 또한 다르지 않다. 원하지 않는 단추는 떼어 내면 된다. 남들이 볼품없다고 그게 뭐냐고 해도 제 눈에 예쁘다면 과감히 브로치를 달면 된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2006년이었다. 베이스 기타를 배우고 연주하던 어느 날 새 악기를 사야겠다는 욕망이 찾아왔다. 쓸 만한 나만의 악기 하나를 갖고―방 안에 전시하고 합주실에서 자랑하고―싶었다. 레슨을 받다가 선생님에게 여쭤보았다.


“이번에 나온 00사의 00베이스가 가격도 괜찮고 여러 장르도 소화할 수 있고 큰 단점 없이 소리를 낼 수 있어서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거 살까 하는데 괜찮을까요?”


선생님이 대답했다.


“단점이 없다는 건 좋은 게 아냐. 재즈면 재즈, 클래식이면 클래식, 메탈이면 메탈, 펑크면 펑크에 어울리는 소리를 내야지. 무슨 장르든 소화할 수 있다고? 애매하게 뭐야. 그건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그리고 남들 좋다는 거 말고 네 손에 맞는 걸로 정해. 사람마다 손 크기도 악력도 달라서 비싸고 유명한 악기가 너한테도 답이라는 법은 없어.”

그랬다. 왠지 모르게 망설이게 되던 이유를 선생님이 확실하게 짚어 주었다. 나는 그 ‘애매하게 괜찮은’ 악기를 사지 않았다. 대신 그해에 재즈에 적합한 소리를 내는 베이스를 하나 구매했고, 몇 년 뒤에는 펑키한 사운드가 매력적인 베이스를 하나 더 장만했다. 부모님은 나를 나무랐다. 이미 있는데 왜 또 사?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냐 다른 거야.


이를테면 그런 것이다. 당신이 시를 쓴다고 할 때, 조금 설명적이더라도 길게 쓰는 게 당신에게 즐거움을 주고 문장이 통통 튀면서 매력을 발산할 수 있다. 교과서에서 흔히 보거나 배우는 것처럼 강한 진술이 있거나 압축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은 갖지 않아도 된다. 물론 함축에 대해서는 유의해야 하나, 우선 당장 당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은 무작정 짧게 쓴 시, 분량이 적은 시는 아닐지 모른다. 시는 무조건 짧고, 행과 연을 나누고, 자연을 더불어 그려 내야 한다, 는 인상이 있다면 그것은 초등학생 때부터의 학습으로 많은 이들의 인식에 남아 있는 프리사이즈와도 같다. 그런 시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시도 많다. 당신의 시 안에는 온갖 장식이 주렁주렁 달려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로고 하나 없는 단색의 천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수도 있다. 모든 옷이 당신에게 맞는 옷일 수 없듯이 당신의 시, 당신의 글 또한 당신에게 맞는 것이 따로 있다.


그냥 색깔이 맘에 들어 골랐어

센스는 한마디로 감각, 감각적이라는 뜻. 글쓰기에서의 ‘센스 있음’은 당신이 자신의 글을 비교적 정확히 파악하고 장점을 극대화시키고 있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단점을 줄이는 게 아니라 장점을 늘리는 것. ‘센스 있음’은 당신 자신의 몸(글)에 맞는 옷(말)을 찾을 줄 안다는 칭찬이다. 이거랑 저거를 조합해 보면 어떨까. 실패할 수도 있겠지. 그러니 몸에 최대한 많은 옷을 걸쳐 봐야 한다. 무엇이 어울리지 않는지 알아야 어울리는 옷(작품)을 쓸 수 있을 테니까. 설령 ‘이상하게’ 보여도 당신 마음에 든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대형서점, 독립서점, 도서관, 북카페, 집 그리고 그 밖의 장소들. 당신을 위한 피팅룸은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특정한 브랜드를 쫓지 않아도 된다. 당신에게 딱 맞는 하의, 딱 맞는 상의, 딱 맞는 아우터, 그 모두를 아울러 당신이라는 브랜드가 된다.



구현우 시인 | stoyer@naver.com

눈 뜨는 기분으로 시를 쓴다. 숨 쉬는 마음으로 음악을 한다. 

듣거나 보거나 쓰거나 말하거나 하면서, 겨우 한 사람이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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