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를 시작하기로 했다
작성자
고수리
작성시간
2019-05-16
작성시간
업데이트 : 2019-05-30
조회수
100

밀가루 반죽을 만드는 것처럼 시간도 조물 거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치대면 치댈수록 부드러워지고, 주욱 늘이거나 얇게 피거나, 뭉치면 다시 툭 덩어리가 되는 그런 유연한 존재였으면 좋겠다. 그러나 바람과는 달리, 나의 시간은 끊어질 듯 팽팽한 고무줄 같다. 오랫동안 아슬아슬하고 위태롭고 팽팽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일하고 살림하고 다시 일하는 일상은 초단위로 흘러갔다. 정말 그러고 싶지 않은데 나는 매일 시간이 없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할 일들, 하고 싶은 일들은 아주 많은데 시간이 없다. 정말 너무나 없다.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는 밥을 굶거나 잠을 줄여야 한다. 한동안 그렇게 나의 몸과 마음을 소진시켰다. 나는 엉망이 되었다.



온몸이 아파서 돌아누워 자는 것이 어렵고 아침마다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켰다. 사소한 것에도 왈칵 울화가 치솟고 입 안에 커다란 덩어리를 물고 있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것들을 꿀꺽 삼킨 채로 걷고 또 걸었다. 걷는 동안에도, 차라리 이 시간에 책이라도 더 읽었다면 글이라도 더 썼다면. 자책하는 내가 싫었다.



그렇게 걷다가 골목 안에 작은 요가원을 발견했다. 가정집 같은 대문에 겨우 조그만 팻말 하나 붙어 있는 게 전부였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소규모로 정통 요가를 수련하는 곳이었다. 회원들과 명상, 환경, 채식에 관해서도 이야기 나누곤 했다.

굳이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싶다고 연락하고 오늘 찾아갔다. 짐짓 아무렇지 않은 사람처럼, 요가는 처음인 것 같은 설레는 얼굴을 하고 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긴 의자 위에 다리를 쭉 뻗고 편하게 앉아있던 선생님이 말했다.



"머리카락에 껌이 붙은 것처럼 잔뜩 엉켜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잖아요. 그때는 대단한 게 필요한 게 아니에요. 빗질을 해주면 돼요. 엉킨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것처럼 요가는 몸과 마음을 빗질하는 수련이에요. 요가를 하면서, 호흡을 정리하고 굳은 몸을 풀고 피가 잘 돌도록 움직이고 엉킨 마음을 풀어주면 돼요."



사실 요가는 내가 좋아하는 운동이었다. 전문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요가의 수련과 명상과 철학이 좋았다. 요가 동작들은 우아해 보이지만 안간힘을 쓰며 버틴다. 딱 내 몸 하나 누일만큼의 매트 위에서 나의 숨과 몸과 마음에 집중한다. 나는 호흡하고 움직이고 생각하고 견디며 존재한다. 온전히 나의 존재만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시간. 그 시간이 좋았다. 그래서 나는 그만두었던 요가를 5년 만에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사실 설렘보단 두려움이 앞선다. 쌍둥이를 낳은 후 트고 늘어난 뱃살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옷을 입고 사람들 사이에 설 자신이 없다. 약해진 손목과 무릎이, 틀어진 골반과 척추가 동작을 제대로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오래 혼자였던 내가 낯선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불확실한 일정에 성실하게 출석할 수 있을지도 걱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수련해보고 싶다.



그래서 굳이 이렇게 글을 적는다. 다짐하고 싶어서. 시간과 스트레스에 엉키고 할퀴어 망가지지 않겠다는 다짐. 나의 몸과 마음을 더는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다짐. 이제야 내가 나를 돌보고자 하는 굳은 다짐. 



고수리 | brunch.co.kr/@daljasee

 KBS 〈인간극장〉, MBC 〈TV 특종 놀라운 세상〉에서 방송작가로 일했다. 카카오 브런치에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으며 제1회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첫 책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는 독자들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세종도서 문학나눔’ 도서로 선정됐다. 지금은 어린이 콘텐츠 채널 <토닥토닥 꼬모> 작가, 글쓰기 안내자로 활동하며 남편과 쌍둥이 두 아이와 일상을 함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세이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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