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개론
작성자
구현우 시인
작성시간
2019-04-23
작성시간
업데이트 : 2019-04-23
조회수
91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집 근처에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오래된 상가를 허물고 아파트를 짓는 중이었다. 철골이 오가고 흙먼지가 날리는 현장이었다. 펜스 밖에 붙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미래 완성도면을 보며 나는 ‘정말 이게 만들어진다고?’라며 속으로 반문했다. 그렇게 집 근처의 공사현장으로만 인식하고 지나다녔다. 그런데 불과 엊그제쯤 늦은 밤에 번쩍이는 빛을 보았다. 저기는 휑한 곳이었는데. 소음과 먼지만 가득한 곳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별다를 게 없던 그곳에 눈이 갔다. 도면 이상으로 웅장하고 눈부신 건물이 거기 있었다. 단숨에 불쑥 지면으로부터 솟아오른 것만 같은 그 무엇이.


짓습니다, ‘이것’을.

나는 건축과 글쓰기가 참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빈터=백지, 건축 목적=텍스트의 장르, 사업계획(서)=쓰기에 관한 메모들, 디자인=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단상, 나아가 틀을 잡고 뼈대를 올리고 살을 붙이는 작업까지 참으로 흡사하다.

첫눈에 바로 감탄과 경이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 있다. 삐딱한 시선으로 보려고 해도 이미 경이에 사로잡힌 마음은 경탄에 찬 와― 만 내뱉게 한다. (여기서 작품은 글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당신이 놀랐던 대상이나 상황을 <작품>의 자리에 넣어 보기를!) 의문은 단 한 가지.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거지? 천재가 영감으로 빚어낸 산물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부분(‘그분’이 오시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으므로)은 그렇지 않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순간의 기지로 살려낼 수 있는 애드리브는 거의 없고, 철저하고 지독한 계획 속에 하나의 작품이 구조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기승전결에 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고 했던가. 그 말은 곧, 시작이 있어야 끝이 있다는 뜻이다.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올려야 한다. 막연해지지 않도록 지금 함께 하나의 도면을 만들어 보자. 처음엔 계획이 필요하다. 당신은 어떤 건물(글)을 지으려고 하는가? 거주, 의료, 식당 등의 목적이 다르듯 “나”의 목적과 이유는 무엇인지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일상의 한순간이 좋아서. 하루 동안 먹은 것과 전체 칼로리를 기록하고 싶어서. 올해의 목표를 지켜 나가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 모든 게 이유가 된다. 그중 한 가지를 잡으면 된다.

일단 1월 1일부터 시작된 목표가 어디까지 이뤄졌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 수 있을지 기록하기 위한 글이라고 전제하자. 토대가 잡혔다면 자재를 모으고 뼈대를 잡아야 한다. 여기서 자재란 글 안에 쓰일 수 있는 단어들이며, 뼈대란 플롯(이야기 구조)을 만드는 일이다. 공부, 다이어트, 취미 등 당신이 미리 수집한 단어들을 보관해 두고 오늘 당신의 하루는 어땠는지 되감아 보자. 여기서 뼈대란 말의 핵심은 필요하지 않는 것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주된 이야기가 자전거를 타고 천변을 따라 다른 마을까지 갔다 왔다, 고 한다면 그 밖에 다른 이야기는 배제해도 된다.

과유불급이라지 않는가. 살을 붙인다는 것은 건물의 내부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지 확정된 건물의 외연을 넓히는 일이 아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본 풍경에 대해 말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우나, 생뚱맞게 교실에 관한 말을 꺼낸다거나 하는 것은 읽는 이의 집중을 흐트러뜨릴뿐더러 쓰는 자기 자신조차 중심을 잡지 못하게 한다. 잡아 놓은 토지(뼈대)가 수천만 평에 이를 정도로 거대하다면 여러 이야기를 엮어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런 모든 전제는 기반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는 점에 있다. 이야기의 축조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딱딱 맞아 들어가는 블록을 끼워 내는 작업이다.


분수를 아니까 할 수 있습니다

흔히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말을 부정적으로 쓴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자신이 어디까지 할 수 있고 어디까지 할 수 없는지 알게 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분수에 맞지 않아서 못하는 게 있다면 분수를 알기 때문에 그 안에서는 더 잘할 수 있다. 당신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당신이 못할 것은 전혀 없다.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된다. 두 손에 잡히는 자재와 도구를 갖고 하나씩 쌓아 보도록 하자. 처음부터 큰 것을 욕심내지 말기를. 작은 것이 모이면 큰 것이 된다. 결과는 주문 한 번에 이뤄지는 마법이 아니다. 당신은 투자자와 설계자인 동시에 작업자이며 미래의 거주자이기도 하다. 설령 허물게 되더라도 그조차 당신의 몫이다. 믿고 시작해 보기를. 당신은 당신의 몸과 마음이 지은 견고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구현우 시인 | stoyer@naver.com

눈 뜨는 기분으로 시를 쓴다. 숨 쉬는 마음으로 음악을 한다. 

듣거나 보거나 쓰거나 말하거나 하면서, 겨우 한 사람이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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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체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