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멜로디 그리고 말 한마디
작성자
구현우 시인
작성시간
2019-04-08
조회수
811

스물다섯 이후 나는 두 개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하나는 시인. 하나는 작사가. 가끔 어떤 이들은 소위 말하는 순수(문학)와 대중(음악)의 일을 병행하는 게 가능한지 묻는다. 더불어 요즘 노래에선 시적인 가사를 찾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나는 그것이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가사가 시적일 수는 있어도, 시는 아니다. 시는 시다. 가사는 음악이다. 트랙이라는 도화지가 있다면 ‘음악적’이라는 붓에 이따금 ‘시적’이라는 색을 묻힐 뿐이다. 글로 적으면 평범한 말 한마디가 멜로디와 함께했을 때는 가슴 깊이 파고드는 일이 되기도 한다. 요약하자면 가사는 귀로 보는 텍스트다.


귀벌레는 혼자서도 잘 자란다

우연히 또는 좋아서 듣던 노래가 온종일 귓가에 맴도는 현상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특히 수능금지곡이라 불리는 샤이니의 <Ring Ding Dong>, SS501의 <U R Man>, 레드벨벳의 <Dumb Dumb>과 같은 곡들의 중독성이란 정말이지 엄청나다. 지금 언급한 탓에 머릿속에 위 노래들이 재생되어 버린 이도 있을 것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불쑥 우리를 괴롭힌다. 이 현상을 귀벌레(earwarm)라고 부른다.

듣기에 좋다고 히트곡이 되지는 않는다. 귀벌레는 너무 좋아서 자주 아른대는 한 사람이거나 혹은 반대로 아무리 미워도 떨쳐낼 수 없는 그 사람과도 같다. 자꾸 생각하다 보면 어쩐지 친숙하고, 어딘가 괜찮아 보이고, 짜증이 나더라도 모르는 사람보다는 마음이 가는 법이다. 호감의 반대는 비호감이 아니라 무관심이 아니던가. 사랑과 증오는 다른 면을 지닌 각각의 페이지라기보단 등을 맞대고 있는 양면 종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귀벌레는 흔히 발견된다. 나에게 상처가 되었던 누군가의 말은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든다. 때로는 “아프지 마”와 같이 인사치레에 가까운 별것 아닌 말이 사람의 마음에 오래 남아서 큰 위안이 되기도 한다. 특별한 말이란 잘 쓰이지 않는 단어나 유니크한 문장을 가리키지만은 않는다. 모두의 마음을 동시에 움직이는 방법은 없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비슷한 순간에 울거나 웃을 수는 있다. 백 명의 사람에게는 백 개 이상의 성격과 수백 개를 훌쩍 넘어서는 감정이 있으니까. 사소한 말로 다른 이를 공감시키려면 우선 나를 먼저 설득해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나’에게 특별한 말을 필요로 한다.


왜 어떤 목소리는 평생 잊히지 않는 기억이 되는가. (출처: 영화 <인사이드 아웃> 스틸컷)


당신의 목소리로 들으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모든 사람에게는 고유한 음색(音色)이 있다. 모창하듯 흉내 낼 수는 있어도 아주 똑같을 수는 없다. 글을 쓸 때도 당신의 음색은 감출 수 없이 묻어난다. 당신이 좋아하는 단어, 당신의 필체, 당신의 경험, 그리고 당신의 생각은 당신만의 것이다.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당신이 하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유려하지 않아도 좋다. 이미 있는 이야기라거나 어디서 본 문장이 아닐까 지레 겁먹을 필요도 없다.

비가 몰고 오는 슬픔에 관해 노래한다고 할 때 이선희가 부르는 마음과 방탄소년단이 부르는 마음은 다를 수밖에. 똑같은 문장을 발화한다고 해도 그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문장을 누가 소유할 수 있을까.

그러니 당신은 당신을 믿고 써 보기를 바란다. 시라고 하면 시가 되고, 그림이라고 하면 그림이 되고, 음악이라고 하면 음악이 된다. (글)쓰기란 이것이 이것일 수밖에 없다고 우기는 작업이다. 정해진 틀은 없다. 쉬운 말로 나오지 않는다면 쉽게 말할 수 없음에 대해 쓰면 되는 일이다. 세상의 많은 소리에 묻혀 있는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기를. 거기서 출발한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 보기를. 그것이 바로 당신만의 리듬(Rhythm)이다.



구현우 시인 | stoyer@naver.com

눈 뜨는 기분으로 시를 쓴다. 숨 쉬는 마음으로 음악을 한다. 

듣거나 보거나 쓰거나 말하거나 하면서, 겨우 한 사람이 되어 간다.

댓글 (0)
무체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