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만의 도서관을 갖기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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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에듀 뉴스룸
작성시간
2019-03-11
작성시간
업데이트 : 2019-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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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를 한다. 적어도 반년에 한 번씩, 나는 책장에 꽂힌 책들의 배치를 바꾼다. 어차피 집에 있는 책의 목록이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굳이? 그렇다. 예술적인 작업을 위해 환기를 한다거나 하는 그런 거창한 이유는 없다. 단지 쉽게 질리기 때문이다. 자주 보는 거울 속의 내 얼굴이 별반 달라지지 않는 것도 지겨운데, <상실의 시대> 옆에 <텍스트의 즐거움>이 있는 걸 뻔히 알고 매일 마주하는 일은 당연히 싫증이 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이든 어른이든 흥미가 생겨야 “한다”. 저명한 인물부터 무명의 네티즌까지, 노력하는 자는 재능 있는 자를 이길 수 없고 재능 있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그랬다. 취미가 직업이 될 수 있다면 직업이 취미가 될 수도 있겠지. 물론, 마음을 먹기란 그처럼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쓰기 전 독서가 중요하다고들 하던데, 그렇다면 독서 전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일단 사고 본다

책에는 물성(物性)이 있다. 한 권 한 권이 지니는 어떤 특별한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책을 구매한다. 베스트셀러라서. 표지가 예뻐서.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들고 다니기 가벼워서. 언젠가 읽을 거 같아서. 라떼나 조각 케이크와 함께 SNS에 올리기 좋아서. “작가들은 그렇지 않죠?” 작가들도 그렇다. 오히려 남들보다 더 쓸데없는 생각으로 사기도 한다. 뭘 살 돈이 생겼으니까 책을 사는 게 그중 하나다. 그렇게 사 두면 다 읽을 것 같지만, 원래 계획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읽는 와중에 사고(한 권의 책은 다른 책을 갈망하게 한다. 그리고 신간은 계속 나온다.), 읽기 전에도 산다. 자기 서가에 있는 책을 모조리 다 읽었다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생김새가 같은 쌍둥이조차 생활과 운명이 다른 것처럼, 비슷한 삶을 사는 두 사람이 있다고 해도 책장은 제법 다른 모양을 하고 있을 것이다. 삶이 얼굴이라면, ‘나만의’ 책장은 표정이다. 누구나 그러하듯 얼굴은 태어나면서부터 지니게 되는 것인데, 표정에 따라 타고난 얼굴(삶)은 변모한다. 미간에 자꾸 인상을 쓰면 거기에 주름이 지고, 눈웃음을 자주 지으면 눈가에 물결이 생기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책장(표정)에는 우리 각각의 취향, 습관, 의식 등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중요한 일을 앞둔 상황에서는 무의미한 일에 더 끌리기 마련이다. 괜히 책상 서랍을 정리한다거나, 훌쩍 어딘가 가보고픈 여행지를 구글링한다거나. 앞서 말한 새로운 인테리어도 이와 다를 바 없다. 많은 이들이 쓰기 전 ‘독서’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바로 그 독서 전에는 무엇이 필요한지 말해 주지 않는다. 고기를 굽기 위해서는 조금씩 불판을 데워야 하고, 수영하기 위해 물에 들어가려면 준비운동을 해야 하고,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는 암전이 필요한데 말이다. 어깨에 힘을 빼고, 그냥 그날 가장 끌리는 책을 한 권 뽑아서 보면 뭐 어떤가. 어깨에 힘을 주지 않아도 된다. 하나씩. 조금씩. 예열은 쉽고 가벼워도 좋은 것이다. 책은 물건일 따름이다. 무슨 대단한 가치를 얻어야 한다는 생각은 부담으로 다가올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필독서는 없다.


몸을 쓴다 그러니까 몸은 쓴다

대화를 나눌 때 우리는 서로의 표정을 읽는다. 나는 당신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당신은 나의 이야기에 적절한 리액션을 보인다. 우리는 함께 분위기를 읽는다.

우리는 거리를 잰다. 슬픔에 빠진 사람이 앞에 있을 땐, 가까이 붙어 등을 토닥여 주는 게 답일 수도 있고, 지칠 때까지 울도록 가만 지켜봐 주는 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책(읽기, 나아가 쓰기)과 ‘나’의 사이도 다르지 않다. 그럴 타이밍이 아닌데 억지로 다가가기만 하다가는 있던 관계마저 망치고 만다. 눈을 뜨고 종일 생활하다 잠이 드는 그 순간까지 누구나 몸을 쓴다. 쓰려고 하지 않아도 쓰인다. 책장의 배치를 바꾸든 한 권의 책에서 읽고 싶은 부분만을 읽든 그것은 오롯이 당신의 몫으로 당신 안에 쌓인다. 이야기 속 인물의 행동이나 말투를 모방해도 모방하는 이는 결국 자기 자신이다.

서가를 보는 일을 멈추고 아무거나 써 본다면 알게 된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한 그대로의 사람이 아니고, 빈 종이 위에는 당신이 아니라 당신의 몸이 쓰이고 있다는 것을. 좋으면 사고, 내키면 읽고, 그다음 다른 무엇으로도 어쩔 수 없을 땐 쓰면 된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맨얼굴을 볼 수 없지만, 거울처럼 스스로의 한 면에 접근해 볼 수는 있다. 그것은 바로 책과 종이와 펜이다. 읽으면서 쓰면서, 때로는 읽거나 쓰지도 않으면서, 당신은 당신도 모르게 이미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도서관을 소유하고 있다.



구현우 시인 | stoyer@naver.com

눈 뜨는 기분으로 시를 쓴다. 숨 쉬는 마음으로 음악을 한다. 

듣거나 보거나 쓰거나 말하거나 하면서, 겨우 한 사람이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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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체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