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마주한 3인 Part 3. 학부모가 되는 길
작성자
박경미 디자이너
작성시간
2018-09-17
작성시간
업데이트일 : 2018-09-17
조회수
1472

자, 드디어 나의 이야기다. 선이와 민이의 변화의 직격탄을 제대로 맞는 것은 아무래도 엄마인 ‘나’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작금의 변화가 나에게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고 내가 견뎌 내야만 한다는 것이 선이가 유치원 졸업식을 하기 전부터 이미 나에게 큰 스트레스였다.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는 시뻘건 용암이 굽이치는 낭떠러지 위에 홀로 서 있고 돌로 만들어진 커다란 벽이 서서히 움직이며 낭떠러지 끝으로 나를 밀어내는 것 같았다. 그렇다. 난 함정에 빠진 것이다. 온갖 속임수를 빠져나가 진귀한 보물을 차지하는 주인공은 적어도 나는 아닌 듯했다. 나는 무서웠고 겁이 났다. 다가올 일들을 겪어 보지 않음에서 비롯된 무지와 그것을 교묘하게 파고드는 주변의 조언(?)이 나의 막연한 두려움을 더 극대화하는 것 같았다.

 

“이제 본 게임 시작이네~, 넌 이제 죽었다. 초등학교는 유치원하고 완전 틀려.

그만둘 위기가 몇 번이나 있었지. 어느 팀 아무개는 결국 그만뒀지 아마?

학부모 총회에서 얼굴에 철판 깔고 엄마들 전화번호 꼭 따.

안 그러면 정보에서 제외되고 아이도 친구 사귀기 힘들더라.”

 

나를 특히 더 두렵게 한 것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대해서는 의연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초등학교는 정말 힘들었노라며 차원이 다르다고 말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좀 더 다양하고 많은 회사 내 엄마들의 의견을 듣고 싶었지만, 회사에는 초등학교 고학년 또는 그 이상의 자녀를 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사이 시간은 속절없이 잘도 흘러갔고, 드디어 대망의 3월이 왔다.

  


입학식에 이어 학부모 전체 총회와 반 총회, 그리고 학부모 개별 면담이 몰아쳤다. 회사 선배엄마들의 조언대로 난 어색함을 무릅쓰고 몇몇 엄마들과 연락처를 교환했고, 그래서 단톡방에 초대되었고, 반 아이들이 함께하는 방과후 체육활동(여자 아이들은 생활체육, 남자 아이들은 축구교실)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다. 이후 반 아이들 모두 생일 잔치를 할지 말지, 생일 잔치에 선물을 준비 할지 말지에 대한 것들이 단톡방에서 결정되었다. 말로만 듣던 부재중 카톡 수가 150을 넘어가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회사에 무슨 사고가 난 줄 알고 깜짝 놀랬더랬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고, 그래서 어색하고 당황스러운 와중에도 의연하려 노력했지만, 우리 학교는 유난히 전업 주부의 비율이 높다는 교감선생님의 말처럼, 엄마들은 이미 서로를 잘 아는 듯했고 그로 인해 어디 가서 주눅 드는 성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슬그머니 주눅이 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입학식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선이]


그사이 민이의 유치원도 입학식과 학부모 총회와 개별면담이 잡혀 3월 한달은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였다. 모두 참석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선택해야만 했고, 희생되는 것은 상대적으로 경험을 통해 시스템을 이미 잘 알고 있는 민이의 유치원 일정이었다. 어떤 이는 3월 첫 주에 일주일 휴가를 내고 아이 옆에 붙어 있으라 하는데 학교나 유치원의 행사는 주 단위로 있기 때문에 일주일 휴가를 낸다고 해서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월차를 매번 내는 것도 눈치 보이고, 혹시나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연차를 아껴야 했기에, 주로 반차를 내어 학교 일정에 대응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때에는 아침에 아이들을 챙겨 보내는 것을 포함해 하루에 네 탕을 뛰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너무너무 피곤하고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애썼다. 내 아이가 직장 다니는 엄마를 둬서 선생님으로부터 역시 꼼꼼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을까 봐, 그래서 아이들에게 영향이 갈까 봐 애쓰고 또 애썼다. 3월 한 달은 이제 막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는 달이니만큼, 서서히 아이들을 적응시키기 위해 시간표도 주 단위로 바뀌고, 교과서와 소지품에 일일이 이름을 쓰는 일부터 그날그날 챙겨야 하는 유인물과 준비물이 정말 많았다.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아이들의 가방을 살피고 스케줄을 정리하고 다음 날을 위해 2인분의 가방을 챙기다 보면 어느새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 되곤 했다. 특히 두 아이의 방과 후 수업 신청은 자비 없는 선착순이기에, 남편과 내가 아이들이 원하는 방과 후 수업을 신청하는 날 저녁, 초긴장된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난리를 치던 순간은 참.. 짜릿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웃픈 순간이었다.(덕분에 선이와 민이는 원하던 방과 후 수업을 모두 신청했다)

 

 

4월이 되어 선이와 민이가 본격적으로 정상수업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방과 후 수업까지 포함해 늘어난 수업시간 때문에 초반에 조금 힘들어했다. 그래도 3월달에 몰아쳤던 학부모 총회나 면담, 그리고 엄마들의 단톡방까지도 잠잠해져서 한결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다만 여전히 나를 힘에 부치게 하는 것은 전보다 더욱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보다 무려 30분이나 등교시간이 빨라져 매일 아침 8시 30분까지 아이들을 등교, 등원시켜야 했다. 학기 시작하고 처음에는 긴장된 마음에 힘든 줄 모르고 일찍 일찍 일어났는데 한 달이 넘어가니 낮밤으로 눈이 팽팽 돌 지경이다. 여유롭지 못한, 초특급 울트라 정신없고 긴장된 아침을 보낸다는 것은 하루 종일 큰 영향을 미친다. 아침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회사에 도착하면 이미 진이 다 빠져 버려 정신이 들 때까지 시간이 한참 걸렸다. 제때 퇴근하기 위해 다시 한껏 에너지를 짜내어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언제나처럼 아이들의 가방과 준비물을 살피다 보면 이전과는 다르게 밤 11시 30분부터 꾸벅거리는 나를 발견한다. 핸드폰으로 기사 한 편을 볼 새도 없이 잠에 빠져들면 새벽부터 울리는 알람소리에 퍼뜩 깨어 다시금 울트라 초특급 정신없고 긴장된 아침이 시작되는 것이다.


[8시 30분에 민이를 유치원 등원차에 태워 보내고 8시 40분까지 선이를 학교에 들여보낸 후, 갑자기 어지러웠다. 고질병인 이명소리도 너무 크게 들려 잠깐 쉬었다. 출근하기 위해 학교 건너편 카페에 앉아 빈속에 커피를 들이부었다. 아이들이 모두 등교한 길이 한가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점점 예민해졌고 꼼꼼하게 챙긴다는 것이 집착으로 변질되었고 그냥 말하는 것도 모질고 독한 화법으로 바뀌었고 곧 결혼이라는 제도와 세상을 원망하는 지독한 비관주의자로 변모해 있었다. 이런 나에게 당하는(?) 사람은 결국 남편이다. 남편은 매일 아침 8시 30분 민이의 등원을 해주기로 했다. 그 정도가 무슨 돕는 거냐 반문할 수 있겠지만, 상사에게 아이 등원 때문에 일찍 올 수 없다고 통보하는 그 자체가 쉬운 결정이 아님을 잘 알기에, 나는 고마웠다. 이제는 8시 20분이 아닌, 8시 30분에 선이의 등교를 위해 나가도 되는 것이다. 고작 10분 차이지만 아침의 1분은 저녁의 10분과도 같기 때문에 나는 상당한 시간을 얻은 셈이다.

 

비단 선이, 민이, 나에게만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로 인해 남편도 변화를 겪어야 했고 아이들을 돌봐 주는 친정엄마와 이모 역시 정신없는 3월, 4월을 보냈다. 예측해 보건대, 5월은 되어야 한숨 돌릴 수 있을 듯하다. 5월 중간중간에 휴일도 있어서 우리 모두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으니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안정되고 회복할 수 있는 달이 되리라 기대해 본다.



KYONG / 박경미

딸 둘의 엄마이자, 14년차 제품 디자이너. 워킹맘으로서 폭풍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돌이켜 보면 잔잔한 일상으로 추억되는 시간들을 기록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현재 네이버 포스트에서 <두 아이 워킹맘의 기억 저장소>(https://post.naver.com/kyong_pkm)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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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체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