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 속 위인들ㅣ조헌 김시민 편 | 아이스크림 홈런

아이스크림 홈런과 함께 조헌 김시민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작성자 
아이스크림에듀 뉴스룸
작성시간
2024-07-10
안녕하세요. 공부를 좋아하는 습관을 만들어 주는 아이스크림 홈런입니다.
아이스크림 홈런과 함께 우리나라 역사 속 위인들 중 조헌 김시민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시민(金時敏)은 조선시대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무신으로, 1554년(명종 9)에 태어나 1592년(선조 25)에 사망했습니다.

1578년 무과에 급제해 군기시에 입사했으며, 임진왜란 당시 진주판관으로 재직하던 중 인근 지역의 군사와 의병과 연합하여 여러 차례 적을 크게 무찌른 공으로 진주목사로 승진하고 다시 경상 우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되었습니다.

왜적이 2만여 명의 대군을 편성하여 요충지인 진주성을 포위하고 공격해 왔을 때, 김시민은 적은 병력으로 맞서 싸우며 뛰어난 지략과 용맹함으로 적들을 격퇴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부상을 입었으며 결국 1592년 10월 18일 3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습니다.

김시민의 활약 덕분에 이순신은 해전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왜군들은 보급에 직격타를 맞아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그야말로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구국의 영웅으로, 사후 그의 충정과 공로를 기려 이순신과 동일하게 '충무공'이라는 시호가 내려졌습니다.

생애
충청도 목천현 갈전면 백전촌(현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가전리 백전마을)에서 중훈대부(中訓大夫:종3품 문관의 품계) 행 사헌부 지평(行司憲府持平:정5품) 겸 춘추관 기주관(兼春秋館記注官)을 지낸 아버지 김충갑(金忠甲)과 어머니 창평 이씨(昌平 李氏) 사이에서 6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장성해서는 몸집도 크고 도량이 넓었으나, 힘이 강한 것만 믿고 공부는 덜 하면서 목소리만 크게 냈다는 식으로 평가받기도 했었습니다. 1578년 무과 훈련원시에 급제해 겸사복(兼司僕)이 되었습니다. 1583년 니탕개의 난 진압에 참여했으며, 1584년 별시 무과(대과)에 전체 4등인 을과 3위로 급제하였기에 단숨에 품계를 건너뛰어 훈련원 주부(訓練院主簿:종6품)에 제수되었습니다.

임진왜란
1591년에는 진주판관에 임명되었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인근 지역의 군사와 의병과 연합하여 여러 차례 적을 크게 무찌르는 공을 세웠습니다. 이 공으로 진주목사로 승진하고 다시 경상 우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되었습니다.

왜적이 2만여 명의 대군을 편성하여 요충지 진주성을 포위하고 공격해 왔을 때, 김시민은 적은 병력으로 맞서 싸우며 뛰어난 지략과 용맹함으로 적들을 격퇴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부상을 입었으며 결국 1592년 10월 18일 3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습니다.


[참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아이스크림 홈런과 함께 우리나라 역사 속 위인들 노래 중 조헌 김시민에 대해 공부를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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