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수업 2차전… 미리 가 본 2021년

작성자 
윤석진 기자
작성시간
2020-12-30


출처 : 클립아트코리아



미래학교 등교 첫날, 아이들이 처음 대한 사람은 영국인 담임교사였다. 그는 매일 아침 웃는 얼굴로 아이들을 반겨 주었다. 서울에 있는 외국인 학교에서 드라마를 가르치고 있는 이 선생님은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 수업'에 도전하고 싶다며 미래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지난 2019EBS4개국 학생들과 함께 미래학교를 열었다. 미래에 있을 법한 학교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였다. 이 학교는 미래학교란 이름답게 인공지능(AI)과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같은 최첨단 기술을 도입했다. 수업은 주입식 교육을 최소화하고 21C 핵심역량 육성에 적합한 플립러닝, 블렌디드러닝을 확대·적용했다. 단순 지식 습득은 집에서 온라인으로 갈음하고 학교에서는 토론이나 응용 과제를 푸는 식의 온-오프라인 병행수업이었다.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 수업도 열렸다. 이 수업에선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사의 상호작용, 쉽게 말해 인간적인 교감이 이뤄졌다. 가르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모두가 무언가를 배워 갔다.
 
EBS의 미래학교 실험을 읽다 보면, 미래의 일 같지가 않다. 그 미래가 이미 도래했기 때문이다. 2년 전만 해도 교실에 AI, AR, VR이 도입되고 줌(zoom)으로 쌍방향 원격수업을 하는 것은 먼 미래의 일이었다. 적어도 1년 후의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올해 초 '코로나19'가 본격화되면서 언젠간 되겠지 했던 디지털 교육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예기치 못했던 일이었고 대비책은 없었다. 특히 학교는 무기력했다. 학습 공백을 막기 위해 애썼지만, 인터넷 인프라, 온오프라인 커리큘럼, 교사의 온라인 수업 지도 역량 등 무엇 하나 딱 부러지게 준비된 것은 없었다. 그 결과 학습 효율은 떨어지고 사교육 의존도는 높아졌다. 무엇보다 경제적 격차가 학력격차로 이어질 여지가 커졌다. 금전적인 여유가 없는 가정의 아이들은 온라인 학습 콘텐츠에 접근하지 못하고 방치됐다. 정부와 지자체 학교가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내년에도 안심할 수 없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 확산세는 누그러지겠지만, 2, 3의 코로나가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영국에선 벌써부터 코로나 변종이 발견돼 세계적인 집단 감염병이 뉴노멀이 될 것이란 회의론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영국 면역학계의 권위자인 마크 월포트는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류와 영원히 함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반대의 미래도 그려 볼 수 있다. 집단 면역체계가 구축되면서 모든 생활이 정상화되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마스크나 차단막 따위는 버려버리고 모두가 교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업도 듣고 수다도 떨 것이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한 제약이 사라진다고 최첨단 기술의 장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확산 여부를 떠나, 학교의 디지털화는 계속 진행될 확률이 높다. 이미 디지털 플랫폼과 콘텐츠의 ''을 본 교사들은 종이 교과서와 오프라인 수업만 고집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지난 7월 전국 초중고 교사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코로나19 종식 후 가장 큰 변화로 온오프라인 수업이 적절하게 보완되는 블랜디드러닝이 대세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답한 교사는 56.9%로 가장 많았다.

AI를 활용한 맞춤형 수학 수업, VR·AR을 접목한 과학 수업도 먼 미래 일이 아니다. 교육부는 현재 학생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통해 맞춤형 학습을 제공하는 'K-에듀 통합 플랫폼'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빠르면 2023년에 학생의 이력과 특성 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서비스가 시작될 예정이다. 또한 오는 2024년에는 전국의 모든 학교에 VR, AR 기술을 활용한 '지능형 과학실'이 완비된다. 민간 교육업체의 홈스쿨링 상품에 있던 에듀테크(edutech) 서비스가 공교육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문제는 교사다. 디지털 교육 인프라와 전폭적인 정부 지원이 있다 해도 교육의 주체인 교사가 바뀌지 않는 한 학교를 둘러싼 모든 긍정적인 변화는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다. 다행히 어찌어찌 1라운드가 끝나고 잠깐의 준비시간이 주어졌다. 이 기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내년 3월부터 시작될 코로나 2라운드의 승패가 결정될 것이다. 1라운드 때는 수비만 했다. 디지털 툴로 학습공백을 막기에 급급했지만, 내년부턴 달라져야 한다. 좀 더 공격적으로 새로운 무기를 활용해야 한다. 오프라인 수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학습 효율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디지털 툴을 활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줌과 같은 화상회의 플랫폼, 동영상 콘텐츠의 메카가 된 유튜브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고, 직접 영상을 찍고 편집하고 업로드까지 하는 크리에이터로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양질의 콘텐츠, 플랫폼을 선별하는 감식안도 지닐 필요가 있다. 지금의 학교는 과도기를 겪고 있다. 민간 교육업체들을 향해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 상황이다. 그 틈바구니로 점점 더 많은 민간 교육 상품이 공교육에 접목될 것으로 보인다. 모든 공산품이 그렇듯이 교육 상품 또한 품질이 제각각이다. 양질의 상품이 있는가 하면, 기술력은 뛰어나지만 교육 효과가 낮거나 비윤리적인 상품도 섞여 있을 것이다. 가족에게 좋은 것만 해 먹이겠다는 주부의 심정, 최후의 방어선을 지키는 군인의 자세로 민간 교육 상품을 바라봐야 한다.
 
감정의 교류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학생들이 가장 힘들어 했던 것 중 하나가 이 부분이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어찌 됐든 공부는 할 수 있다. 온라인 강의를 듣거나 학원에 가면 된다. 이것만 해도 어느 정도 성적을 올릴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생들은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다. 지식을 입력하고 출력하는 것 외에도 인간적인 교감을 필요로 한다. 격려의 말 한 마디, 따듯한 눈길 한 번은 최첨단 기술로도 대체할 수 없는 교사만의 고유 영역인 것 같다. EBS 미래학교에서 영국교사가 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번 겨울 방학이 교사들에게 부족한 지식은 물론이고 마음의 여유까지 챙기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윤석진 기자 | drumboy2001@mtn.co.kr

머니투데이방송 교육산업 담당. 기술 혁신이 만드는 교육 현장의 변화를 관찰합니다. 쉬운 언어로 에듀테크 사업 동향을 가감 없이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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