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가르치는 민주주의

작성자 
윤석진 기자
작성시간
2020-10-29


출처 : 클립아트코리아



딥페이크 기술을 교육에 접목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미국의 비영리단체 리프리젠트어스(RepresentUs)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 대선 투표를 독려하는 '독재자 김정은(Dictators- Kim Jong-un)'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검정 인민복 차림과 대조되는 허옇게 밀어 올린 옆머리, 작달막한 눈썹과 둥글넓적한 얼굴, 걸걸한 목소리까지. 그는 누가 봐도 김정은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김정은이 아닌 김 위원장의 얼굴을 한 합성물이었다. 영상 제작자는 딥페이크(deepfake) 기술을 이용해 누군가의 얼굴 위에 김정은의 얼굴과 음성을 덧입혀 똑같이 생긴 가상의 인물을 만들고, 그에게 선거를 독려하는 원고를 읽게 했다. 김정은 본인도 내가 이런 말을 했던가 기억을 더듬어 볼 정도로 진짜 같은 담화가 완성된 순간이다.

이 영상은 그동안 딥페이크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한눈에 보여 준다. 사람들은 그게 가짜인 줄 알면서도 진짜 김정은이 말을 한 것인 양 큰 충격을 받았다. 가상현실(VR) 롤러코스터를 탄 사람이 맨 땅 위에서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사실이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속절없이 감정을 이입했다. 합성된 인물의 외양, 표정, 말투, 제스처까지 김정은과 너무나도 흡사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둘도 없는 독재자가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찬양하는 아이러니는 그 이질감만큼이나 학습 효과를 극대화했다. 이 사실을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임팩트가 덜했을 것이다.

학교 선생님을 본 딴 사례도 있다. 지난 2018년 뉴질랜드는 전국 12만 5,000개의 초등학교에 인공지능(AI) 아바타 선생님 윌(Will)을 배치했다. 그는 실제 교사의 외양과 음성을 그대로 복사한 사이버 교사로, ‘지속가능한 에너지’ 교육을 담당이었다. 이 분야에 있어서는 같은 모습을 한 인간 윌보다 사이버 윌이 더 뛰어났다. 그는 바람과 태양, 파도와 같은 다양한 재생에너지가 작동하는 원리를 설명하고, 확인차 질문도 던졌다. 학생이 정답을 말하면 나이스! 정확해! 천재야! 라는 피드백을 주기까지 했다.

딥페이크 기술은 오프라인을 넘어 온라인 무료 교육 플랫폼인 유다시티(Udacity)에도 접목됐다. 그동안 유다시티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온라인 동영상 강의를 제작해 왔다. 강사와 성우, 카메라 기사, 영상 편집자를 섭외하고 스튜디오까지 빌려야 해 비용부담이 컸다. 그런데 윌을 쓰고 난 이후 이러한 부담이 확 줄었다. 강사의 오디오 내레이션이나 텍스트만으로 동영상 강의를 만들 수 있게 된 덕분이다.

저렴한 제작비용과 실제 사람을 방불케 하는 기술적 정교함은 교육 도구로서 딥페이크가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마음만 먹으면 자기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어 학생을 가르칠 수 있고, 김정은처럼 스페셜 게스트도 초대할 수 있다. 피타고라스가 가르치는 피타고라스의 원리, 아인슈타인이 설명하는 상대성이론, 방탄소년단이 소개하는 K-POP 역사 수업 등 주제에 따라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인물을 온라인 교단 위에 세울 수 있다.

게다가 제작비용은 기존 방식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저렴하다. 딥페이크로 데이비드 베컴 영상을 만들어 주목받은 신디시아(Synthesia)에 따르면, 전통 방식으로 영상을 제작할 경우 5000달러가 들지만, 딥페이크를 이용하면 2000~3000달러로 비용이 줄어든다. 시간도 대폭 단축된다. 5분짜리 음성 녹음 하나와 텍스트만 있으면 수십 수백 시간에 달하는 강의를 찍어낼 수 있다.

다만,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제가 있다. 딥페이크는 누군가를 감쪽같이 속인다는 특성 탓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 실제로 저명인사의 영상을 이용해 가짜 뉴스를 만들거나 연예인이 등장하는 성인물을 제작해 배포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지난해 사이버 보안업체 센시티(Sensity)가 조사한 결과, 1만 4000개의 딥페이크 비디오가 온라인상에 존재했고, 그중 96%가 성인물이었다. 정상적인 영상은 4%뿐인 셈이다. 개인의 초상권을 보호하는 법적 조치를 강화하고 악성 영상을 차단하는 기술적 보완이 시급하다. 



윤석진 기자 | drumboy2001@mtn.co.kr

머니투데이방송 교육산업 담당. 기술 혁신이 만드는 교육 현장의 변화를 관찰합니다. 쉬운 언어로 에듀테크 사업 동향을 가감 없이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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