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놀이로 바꾸는 게임화의 마법

작성자 
윤석진 기자
작성시간
2020-08-07
출처 : 클립아트코리아


학교 수업에 빠진 벌로 담장에 페인트를 칠하게 된 톰 소여. 마음대로 놀지도 못하고 친구들에게 놀림까지 당할 것을 생각하니 속에서 열불이 났지만, 순간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재밌는 놀이로 가장해 남이 대신 칠하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톰이 신나게 노는 걸 본 친구들은 서로 하겠다고 난리를 쳤다. 톰은 못 이기는 척 페인트 붓을 넘기고 여유를 즐겼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익히 아는 톰 소여의 페인트 에피소드다. 하지만 톰이 마냥 재밌는 척만 했다면 친구들이 완전히 속아 넘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힘든 일을 재밌는 놀이로 바꾼 신의 한 수는 '경쟁심' 부추기기였다. 톰이 "이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아이는 아마 천 명에 하나, 아니 이천 명에 하나 있을까 말까일 거다"라고 말하자 아이들은 페인트칠하기는 물론이고 온갖 선물까지 갖다 바쳤다.
 
이 책의 저자인 마크 트웨인은 '어떤 것을 하되 억지로 하면 일하는 것(working)이고,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면 놀이(playing)'라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의무로 지워진 것들은 대부분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이다. 생계를 위해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 대입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 고도 비만을 눈앞에 둔 다이어터는 자신이 하는 걸 '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긴 하지만, 직장 생활이나 학교 공부가 너무나 재미있고 살 빼는 것이 즐겁다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렇다고 우리가 항상 고통 속에서 억지로 일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게임화(Gamification)'의 마법은 힘든 일을 재밌는 놀이로 바꿔 줄 수 있다. 게임화는 지난 2010년 미국에서 등장한 개념으로, 게임 외적인 분야에 게임 요소를 가미한 것을 말한다. 게임 요소는 성취, 지배, 지위, 경쟁, 보상, 도전 등 인간 본연의 욕구를 포함한다. 게임화된 일이 재미를 자아내는 이유도 위에 열거한 원초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톰 소여의 페인트 사건은 '경쟁, 도전, 성취'란 게임화 요소를 이용해 일을 놀이로 승화시킨 예로 볼 수 있다.
 
게임화 기법은 지난 20년간 보건, 의료, 건강, 국방,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며 효과를 입증해 왔다. 게임화 회사 뱃지빌(Badgeville)은 전체 직원의 78%가 게임화 기법을 활용했고, 그중 91%가 효과를 봤다. 최근에는 교육 분야로 확대되는 추세다. 가령, 게임화 이론의 본산지인 미국에는 Grade Point Average(GPA)란 게 있다. 우리나라의 내신 평균 점수 같은 것인데, 단순히 점수만 매기는 체계가 아니다. GPA엔 보상, 경쟁, 지위 같은 게임화 요소가 담겨 있다. 게임 미션을 마치면 종합 점수가 공개되듯, 교실 별로 학생의 성적 순위가 매겨지는가 하면, 고득점 학생에겐 각종 장학금, 가상화폐가 보상으로 제공된다. 성적이 크게 오른 학생은 게임에서 레벨 업을 하듯 우등생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도 있다.
 
기업 중에선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S)가 눈에 띈다. 지난 2014년 MS가 인수한 마인크래프트(Minecraft)는 오늘날 창의력과 사고력, 문제해결능력, 협동심, 코딩 등 다양한 역량과 스킬을 길러 주는 학습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마인크래프트가 성공한 이유는 일반 게임 뺨칠 정도로 재미있기 때문이다. 유저는 탐험자로서 각종 자원을 채취하고, 그걸로 집이나 빌딩 같은 구조물을 짓는다. 구덩이를 파 덫을 놓기도 하고, 어두운 밤이면 등불을 프로그래밍한다. 다른 플레이어와 협동해 미션을 수행하거나 서로 대결하는 모드도 있다. 근래에 개발된 e-스포츠 버전은 과학, 기술, 공학, 수학 등 스템(STEM) 학습까지 지원한다. 재밌는데 유익하기까지 하니 현재 115개 국가가 교과과정에 마인크래프트를 활용하고 있으며, 지난 3월 24일 무료 이용이 가능하게 된 후에는 무려 5천만 건이 넘는 다운로드 수를 기록했다.
 
교육에 게임의 특성을 접목하는 학교는 앞으로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수동적인 학생의 태도를 적극적으로 바꾸어 학습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간과하면 안 되는 것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재미가 다가 아니라는 점이다. 재미만 있고 학습 효과가 적거나 아예 없다면 그냥 게임이지 게임화 학습이라 할 수 없다. 반대로 교훈만 있고 재미가 적어도 실패다. 학교가 공급자 시각이 아닌 학생의 입장에서 커리큘럼을 짜야 하는 이유다. 교사 혼자만 빵 터지고 학생들은 잠잠하다면 교육 과정을 서둘러 수정해야 한다.
 
인센티브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 보인다. 게임화의 한 요소인 인센티브는 단순히 성적을 올리는 데 그치기보다 학습 동기 고취로 이어져야 한다. 자기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대로라면 외재적 동기인 인센티브는 내재적 동기인 스스로 공부하려는 의지를 자극한다. 처음엔 인센티브 때문에 공부했지만 나중에는 스스로의 의지로 공부하는 수준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론은 이론일 뿐 법칙이 아니다. 꼭 이렇게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학생에 따라 인센티브가 없거나 더 늘어나지 않으면, 공부를 멈출 수 있다. 게임화 교육이 순수한 학습 욕구로 이어지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게임화 교육을 통해 배운 내용을 현실 세계로 연결해 주는 다리 역할도 필요하다. 예컨대, 학생이 마인크래프트 코딩 수업에서 소리에 반응하는 전등과 자동문을 만들었다 치자. 이런 경험은 코딩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낮출 뿐이다. 실제 세계에서 프로그래밍을 하려면 파이선이나 자바 같은 코딩 언어를 배워야 한다. 마인크래프트는 코딩이란 영화의 예고편이지 본편이 아니다. 문제는 학생이 예고편만 보고 모든 걸 다 이해했다고 착각하거나, 예고편만 계속 돌려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매트릭스 세계를 살던 네오를 현실로 인도하는 모피어스 같은 교사가 필요하다. 게임화 교육의 성패는 재미와 교훈을 두루 지닌 학습 콘텐츠와 이를 적절히 활용하고 지도할 줄 아는 교사에게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석진 기자 | drumboy2001@mtn.co.kr

머니투데이방송 교육산업 담당. 기술 혁신이 만드는 교육 현장의 변화를 관찰합니다. 쉬운 언어로 에듀테크 사업 동향을 가감 없이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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